구글은 최근 획기적인 전력 구매 계약을 발표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바로 미국의 핵융합 스타트업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CFS)과 200메가와트(MW) 규모의 핵융합 전력 구매 계약(PPA, Power Purchase Agreement)을 체결한 것! 이 소식은 단순한 전력 계약을 넘어, 인공지능(AI) 시대의 급증하는 전력 수요와 탄소중립 목표를 해결할 수 있는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 기술 상용화에 한 발짝 더 다가선 것으로 평가된다.
핵융합 에너지란 무엇인가?
핵융합 에너지는 태양이 에너지를 생성하는 방식과 동일한 원리를 이용한다. 태양은 두 개의 가벼운 원자핵(주로 수소)을 고온·고압 환경에서 융합해 더 무거운 원자핵(헬륨)을 만들며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를 지상에서 재현한 것이 바로 핵융합 발전이다.
핵융합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친환경적: 탄소 배출이 없으며, 기존 원자력(핵분열) 발전과 달리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효율성: 소량의 연료로 엄청난 에너지를 생산한다. 예를 들어, 중수소 100kg으로 석탄 300만 톤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낼 수 있다.
안전성: 폭발 위험이 없고, 연료는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어 자원 고갈 걱정이 없다.
예를 들어, 1g의 핵융합 연료는 석유 8톤에 맞먹는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추정한다. 이는 기존 화석연료나 원자력 발전보다 훨씬 효율적이며,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구글과 CFS의 200MW 전력 구매 계약: 핵심 내용
2025년 6월 30일, 구글은 자사 블로그를 통해 CFS와 200MW 규모의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 계약은 핵융합 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상업적 계약으로 평가되며, 구글은 CFS의 첫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인 ‘ARC’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절반을 구매할 예정이다. ARC 발전소는 미국 버지니아주 체스터필드 카운티에 건설 중이며, 2030년대 초반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발전소는 총 400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으며, 이는 약 15만 가구 또는 대규모 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구글은 이번 계약 외에도 2021년에 이어 두 번째로 CFS에 자본 투자를 진행 중이다. 구체적인 투자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는 구글이 핵융합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이클 터렐(Michael Terrell) 구글 첨단 에너지 부문 총괄은 “핵융합은 깨끗하고 풍부하며 본질적으로 안전한 에너지원으로, 성공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계약의 주요 특징
규모: 200MW, 약 5~6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양.
위치: 미국 버지니아주 체스터필드, CFS의 첫 상업용 발전소 ‘ARC’.
시기: 2030년대 초반 전력 공급 시작 예정.
목적: AI 데이터센터의 급증하는 전력 수요 충족 및 탄소중립 목표 달성.
추가 투자: 구글은 CFS의 기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자본 투자 확대.
왜 구글이 핵융합에 투자할까?
1. AI로 인한 전력 수요 폭증
AI 기술의 발전은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켰다. 예를 들어,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학습시키는 데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전력 소비가 현재의 2.5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구글은 AI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해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전력원을 확보해야 한다. 기존 화석연료로는 탄소 배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날씨 의존성과 공간 제약으로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핵융합은 날씨에 상관없이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매력적인 대안이다.
2. 탄소중립 목표
구글은 2030년까지 모든 데이터센터와 캠퍼스를 탄소 배출 제로 에너지로 운영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핵융합은 탄소 배출이 없고, 기존 원자력보다 안전하며,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상적인 에너지원이다. 이번 계약은 구글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로 볼 수 있다.
CFS는 어떤 기업인가?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CFS)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2018년에 분사한 핵융합 전문 스타트업이다. CFS는 고온 초전도 자석을 활용한 토카막(Tokamak) 기술을 개발하며, 소형이면서도 상업적으로 실현 가능한 핵융합로 설계를 목표로 한다. 2022년, CFS는 자체 개발한 실험로 ‘SPARC’에서 투입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순 에너지’ 달성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이는 핵융합 상용화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CFS는 구글 외에도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 등으로부터 약 20억 달러(약 2조 7천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자금은 SPARC의 실증과 ARC 발전소 건설에 사용되고 있다. 밥 뭄가드(Bob Mumgaard) CFS CEO는 “구글과의 계약은 핵융합 상용화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보여주며, 자금 조달과 공급망 구축에 긍정적인 신호를 준다”고 밝혔다.
핵융합 에너지의 현재와 미래
핵융합 기술은 오랫동안 ‘꿈의 에너지’로 불렸지만, 상용화에는 높은 기술적 장벽이 존재했다. 특히,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초고온(1억 도 이상) 플라즈마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했고, 과거에는 투입 에너지보다 생산 에너지가 적었다. 하지만 최근 AI 기술의 발전으로 연구 데이터 분석 속도가 빨라지며, 상용화 시점이 10년 이상 앞당겨졌다.
한국의 핵융합 스타트업 인애이블퓨전(EnF)의 최두환 대표는 “AI를 활용해 흩어져 있던 핵융합 연구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며 기술적 해법을 찾고 있다”며, “7~8년 내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CFS 역시 2027년 SPARC의 실증을 완료하고, 2030년대 초 ARC를 통해 상업용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다른 기업들의 동향
구글뿐 아니라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핵융합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2023년 헬리온 에너지와 2028년부터 50MW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아마존: 제프 베이조스가 투자한 제너럴 퓨전(General Fusion)을 통해 핵융합 기술 개발을 지원.
오픈AI: 샘 올트먼 CEO가 헬리온 에너지에 약 4억 2500만 달러를 투자.
이처럼 빅테크 기업들은 AI와 전기차 등으로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핵융합을 미래 에너지원으로 주목하고 있다.
한국과 글로벌 핵융합 경쟁
한국도 핵융합 연구에서 뒤지지 않는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KSTAR(한국형 초전도 핵융합 장치)는 1억 도 이상의 플라즈마를 30초간 유지하며 세계 기록을 세웠다. 정부는 2040년까지 한국형 혁신 핵융합로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인애이블퓨전(EnF)은 CFS와 협력해 ARC 발전소의 부품 제작과 공급망에 참여할 계획이다.
글로벌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안후이성 허페이에 대규모 연구시설 ‘CFETR’을 건설 중이며, 2040년대 200MW 규모의 핵융합 발전 실증을 목표로 한다. 반면, 미국은 민간 기업 주도로 빠르게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핵융합 에너지의 도전 과제
핵융합은 매력적인 에너지원이지만, 상용화까지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기술적 난제: 초고온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추출하는 기술 개발.
비용: 초기 투자 비용이 높아,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
시간: 일부 전문가들은 상용화까지 15~30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FS의 순 에너지 달성과 구글의 계약은 핵융합 상용화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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